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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0]서울 마포구 소재 한국언론사협회 연합취재본부 사무실에서 오성균 화백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오성균 화백:“저는 전시를 한다고 며칠 밤새서 따로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작품은 항상 준비돼있습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기에 말이죠!”
오성균 화백은 1946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한양대와 오하이오주 애쉬랜드 칼리지에서 회화를 공부했고, 현재는 뉴욕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오 화백은 미술계는 물론 교포사회에 손바닥이나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는 ‘지두화(指頭畵)’의 대가로 정평이 나있다.
그의 작품에는 강렬함이 절로 묻어나온다. 뭔가 모를 힘이 느껴진다. 손가락 끝의 기가 선과 점 하나하나에 반영됐기 때문이리라.
1972년 지두화를 시작한 오 화백은 지난 1981년 미국으로 이민 와 전역을 돌며 순회 전시회를 열었다.
원래는 동양화로 시작했었으나, 애쉬랜드 칼리지 로버트 레트니 교수의 제안으로 서양화도 접하며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1996년 그는 미국의 건국이념(자유, 평등, 평화, 사랑)을 표현한 ‘아메리칸 드림’은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소장하고 있으며, 닉슨 도서관 및 유엔본부 프레스 센터 등 여러 미술관고 공공 기관에 소장돼있다.
특히 2003년에는 지난 2001년 9.11 테러 가운데 희생된 3,500여명의 원혼을 위해, 108번뇌를 상징한 108점의 지두화를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자리에 전시해 화제를 모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이 어디까지 선과 악의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휩싸였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찾고자 그는 다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오 화백은 예술가 하면 연상되는 불규칙한 삶을 스스로 거부한다. 보통의 직장인들이 하루에 의무적으로 8시간씩 일하듯 그 또한 오전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한다.
이러한 삶의 바탕 위에 그는 피카소를 떠올린다. 처음 우울했던 ‘파랑’의 시기를 벗어나 ‘분홍’의 시기를 맞이해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듯 그 또한 인생의 후반전을 그렇게 마무리하기 원한다.
“제가 1981년도 왔으니 이제 38년 정도 왔겠군요. 지금은 1만 몇 천 점 해놓았습니다. 인생을 마칠 때까지 2만 점이 목표로 계속 정진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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